명절등 집안 모임이 지나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지곤 했다. 누군가는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따며 학문의 길을 걷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풍족한 지원 속에서도 길을 잃은 채 백수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틈바구니에서 지잡대 대졸이라는 쓸데없는 스펙 한 장 달랑 쥔 채 사회라는 소용돌이에 맨몸으로 뛰어든 나는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초라했다. 돈이 실력이 되고 배경이 무기가 되는 세상 앞에서, 내 손에 쥐어진 패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름하고 보잘것없었다.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지 않겠어?” 누군가 던진 이 단순한 위로는 위안이 되기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무겁게 짓이겼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내게도 무언가 작은 재능 하나쯤은 있을지 모른다. 손재주가 조금 더 좋고, 남들보다 눈치가 조금 빠르거나, 힘든 상황에서 악으로 깡으로 꼴아박아버리는 성격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곧바로 회의감이 고개를 든다. “그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터넷 세상이나 SNS를 조금만 돌아봐도 날고 기는 천재들과 눈부신 성과를 낸 이들이 차고 넘친다. 그 높으시고 대단하신 고수들 사이에서 내가 가진 어설픈 장점은 장점이 아니라 그저 평범함, 어쩌면 “아예 무능력”에 가까운 무색무취무미의 공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날 수 없다면, 내 안의 작은 스파크나 발상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지레 희망을 던져버리고 “ㅅㄱ”라는 짧은 말로 도망치듯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볼때, 가장 밝게 빛나는 일등성만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우주라는 공간에는 저마다의 광도와 저마다의 궤도를 가진 수많은 항성들이 존재하고, 그 희미한 불빛들이 모여 비로소 밤하늘이라는 거대한 풍경을 완성한다. 다만 그 사실이 지금 당장의 어둠을 걷어주지는 못한다는 것도 나는 안다.
인생이라는 판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이 정해놓은 좁은 기준, 예컨대 학위나 연봉 같은 잣대로만 줄을 세운다면 우리는 평생 “나보다 더 잘하는 누군가”의 그늘에 가려 무능력자라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줄세우기가 허상이라는 걸 머리로 알면서도, 서열의 눈금에서 내 자리를 확인하는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이성이 위로를 건네는 동안에도 감정은 여전히 제 몫의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게 남들보다 압도적인 재능은 없다. 엔진 달린 물건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거나, 양아치처럼 운전을 한다거나, 악으로 깡으로 힘든 일을 우겨내는 성향 같은 것들. 화려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의 투박하고 비루한 삶의 경험과 결합할 때, 적어도 남이 어지간히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 하나쯤은 된다고,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믿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 못 버티니까.
화려한 자본의 카펫도, 높은 학위의 간판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했다. 낙담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 된다. 남들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현실을 내 두 발로 딛고 서서,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지우지 않으려 한다. 타인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내 손안의 패를 스스로 던져버리지 않기를. 나는 그저, 나만의 속도와 무기로, 내 앞에 놓인 다음 판을 묵묵히 버텨나갈것을 염원 할 뿐 이다.
사람은 하나쯤은 잘하는것이 있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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