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매 다 하고 결제 끝냈는데 빠꾸 먹이는거 뭐임 짜증…..
현장이 충남 보령이라 오토바이로는 6시간 반 걸리는 엄청난 장거리라서 어찌 보면 잘 되었다 싶기도 한데…. 줬다 뺏어 버리니 ㄹㅇ 승질나네요 ….ㅋㅋㅋㅋㅋㅋ 🙁
아 안가~~~~~ ㅗㅗ
10/13

오늘자 11시에 추가물량 티켓이 풀려서 바로 신청했습니다.
아마도 장소가 서쪽끝에 몰려있어 취소표가 많이 나온 듯?
이럴거면 진작에 줫다 뺏지말고 그냥 티켓주지 그랬냐.. 혼코야….. 에잉
오늘은 진지하게 제 인생 최대 자랑거리 하나 풀어봅니다.
1종 대형 / 보통
2종 소형
특수 대형견인 / 구난차
…네, 다 있습니다. 버스, 오토바이, 추레라, 렉카까지 도로 위에서 제가 못 모는 게 거의 없어요.
건설기계 빼고 ㅋㅋㅋㅋ 이 정도면 이제부터 저를 대장 딸배 라고 불러주십쇼 아 ㅋㅋ
서울 투 더 부산, 어디든 배달 갑니다 ㅋㅋㅋㅋㅋ
…… 라고 허세 좀 부려봤는데 장롱면허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면허 쌓인것은 물류 계열 끝판인데 정작 대형차량 운전은 최근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남
그나마 최근 기록이 회사 덤프로 골재장 왔다갔다 할 때… 그것도 드물게 ㅋㅋㅋ
예… 지갑에 들어있던 면허증 보고 갑자기 자랑질 비틱질이 하고싶어졌던거에요 ㅋㅋ
과거 기억을 돌이켜보면 내 부친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될만한 단 하나의 행동 양식도 물려주지 못했다. 내 또래 이대남 삼대남들이 흔히들 가지고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에는 늘상 비슷비슷 일정한 풍경이 존재한다. 주말에 느지막이 동네 공터에서 볼을 주거니 받거니하던 캐치볼의 감각, 캠핑장에서 묵묵하게 장비를 설치하던 아버지의 듬직한 뒷모습, 함께 벌거벗고 땀을 흘리던 목욕탕의 온기, 혹은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때 단호한 위압감으로 선을 넘지않도록 잡아주던 모습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나의 유년시절 도화지에는 그 어떤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휘갈긴듯한 낙서자국 여기저기 낡아빠진 백상지 였던것. 참으로 썰렁한 풍경이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부친 원망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러나 대가리가 굵어지고 나 역시 어른이 되니 깨달았다. 이미 반세기 넘게 굳어져버린 인간을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고, 묵은 원망을 품고 사는 것도 결과적으로 내 자신만을 긁어먹을 뿐 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어릴 적 끝내 채워지지 못한 남성성에 대한 결핍감은 다 어디로 튀어나간것인가? 그 결핍이 거칠고 시끄러운 배기음을 내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라는 외형적인 집착으로 드러난것이 아닌가? 부친이 묵묵히 보여주고 알려주어야 했던 남자의 무게감과 짐을. 나는 기계가 주는 강력한 힘을 빌려 뒤늦게 흉내내고 있는것이라고 뒤늦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뒤늦게 흉내낸다고해서 내가 좋아하고 영위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라는 취미가 탈 씌운 가짜에 불과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시작은 가지지 못한 부성에 대한 결핍감이었을지언정 스로틀을 당기고 핸들을 잡아돌리는 그 순간은 내가 주도하는 내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엔진의 진동과 교감하며 느껴지는 감각은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나아감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부친이 남겨주지않는 도화지 위에 억지로 부성의 그림을 덮어 씌우는대신 기름쩔은때로 도화지에 내 취향의 그림을 직접 그려가는게 아닐까?? 결핍에서 일어난 나의 구성요소는 내게 참으로 달콤쌉싸름한 울림이였다.
남들은 숫자로 기억하는 그해 일들을, 난 조용히 눈감고 그 시절 거리를 지배했던 빛이랑 공기 톤으로 되짚어보곤 한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MZ세대인 내가 지나온 한국 거리는 나의 색 온도 만큼이나 대비적으로 바뀌었다.
하이 콘트라스트 파스텔톤
중1 때까지, 유년기 막 내리는 줄도 모르고 뛰놀던 거리엔 항상 과장된 빛이 감돌았다. 문방구 앞 쨍한 초록색 천막, 빨강 초록이 조잡하게 빛나던 분식집 간판, 친구 손에 들린 메론소다색 슬러시. 피처폰 픽셀마냥 채도 한껏 올라간 만화책 같던 시절이다. 대비 강한 빛들 사이에서 매일 새로운 색깔의 내일을 기대하곤 했다.
모노톤
열네 살 겨울부터 고3 겨울까지는 세상이 거짓말처럼 빛을 잃었다. 내 뇌가 기억하는 그 시절 거리는 완전히 무채색 흑백이다. 도시가 세련되어지겠답시고 원색 간판 다 철거하고 규격화된 회색 디자인을 입히던 때였다. 나 역시 회색 시멘트 교실 에 갇혀 하교길 학교와 집을 잇는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는 세상의 다채로움을 인지할 겨를이 없었다.. 색을 빼앗긴 건조한 풍경이었다.
세피아
스무 살 넘어서는 세상에 다시 온기가 돌았는데, 알록달록함이 아니라 찻잎 우려낸 듯한 묵직한 세피아 톤이었다. 거리는 온통 베이지색 벽돌, 우드톤 가구, 노란 전구색 조명st 점포들로 채워졌다. 스마트폰 앱들은 필카 필터를 입혀 세상을 보여줬다. 대학, 취업 준비라는 힘들었던 과도기를 지나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세피아 색감에 묻었다. 청춘이 영화 같아서 세피아로 기억하는 걸지도 모른다.
약 모노 약 콘트라스트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온 세상이 블랙, 화이트실버가 지배하는 미니멀리즘 시대다. 세상은 대단히 차분해졌고 본질적인 몇 가지 포인트에만 불을 켠다. 소란 떨던 20대 초반 지나 삶의 무게중심을 잡은 지금 내 상태와 딱 닮았다. 굳이 온 세상에 색 칠하려 애쓰지 않아도, 묵묵한 무채색 일상 속에서 내가 진짜 집중해야 할 것들만 선명하게 바라볼 안목이 생겼다.
나이 먹는다는 건 취향에 맞는 색들만 짚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또 어떤 색감으로 거리에 칠해질지 내심 기대는 된다.
명절이나 집안 모임 지나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쌔해지곤 했다. 누군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따며 학문이 어쩌고 하고, 또 누구는 풍족한 지원 속에서 백수로 지낸단 소식이 들린다. 그 틈바구니에서 지잡대 대졸이라는 쓸데없는 스펙 한 장 들고 사회에 맨몸으로 뛰어든 나는 참 초라했다. 돈이 실력이고 배경이 무기인 세상 앞에서 내 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허름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지 않겠어?” 누군가 던진 이 단순한 위로는 위안이 되기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무겁게 짓이겼다.
백번 양보해서 나에게는 엔진 달린 물건 좀 다루고, 양아치처럼 운전 험하게 조지고, 힘든 상황에서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이는 성향 같은 작은 재능은 있을지 모른다. 근데 현실 벽 앞에서 바로 회의감이 든다. “그걸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이 어디있는가…?”
인터넷이나 SNS만 조금 돌아봐도 날고 기는 천재들이랑 눈부신 성과 낸 이들이 차고 넘친다. 그 대단하신 고수들 사이에서 내가 가진 어설픈 장점은 장점이 아니라 평범함, 어쩌면 “아예 무능력”에 가까운 무색무취무미인 공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날 수 없다면, 내 안의 작은 스파크나 발상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지레 희망 던져버리고 “ㅅㄱ” 치고 도망치듯 떠나고 싶어지는 거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사람이라는 인격체를 세상 잣대로만 줄 세우면 우린 평생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머리로 알아도 서열 눈금 확인하는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이성이 위로하는 동안에도 감정은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거다.
내게 압도적인 재능은 없다. 그냥 투박하고 비루한 경험들이 뭉쳐서 적어도 남들이 어지간해선 흉내 못 낼 자원 중 하나는 된다고, 난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안 믿으면 너무 힘들어 못 버티니까.
화려한 자본의 카펫도, 높은 학위 간판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했다. 낙담 안 했다면 구라다. 끝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현실을 내 두 발로 딛고 서서 자빠지면 다시 일어나는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팩트 하나는 지우지 않으련다.
타인의 화려함에 눈멀어 가진 능력을 스스로 던지지 않기를. 난 그냥 나만의 속도로 내 앞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버텨낼 뿐이다.사람은 하나쯤 잘하는 게 있다, 다만 남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은 없을 뿐.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네가 선택한 삶이다..

최근 들어 맨날 일만 하고 살았더만 멘탈이 개박살 난 줄 알았읍니다…
문득 “내가 맨날 노동이나 하려고 태어난 소인가…?” 라는 자괴감이 팍 들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참다 참다 이성을 잃고 무지성으로 결제 긁어버렸네요ㅋㅋㅋㅋㅋ
과감하게 연차 하나 까서 쓰고 일-화 2박 3일 여정으로 질렀는데,
다 해서 25만 원 줬습니다! 요즘 물가 생각하면 나름 선방한 거 맞지요???
물론 남들이 보기엔 푼돈이고 껌값일수도 있지마는 그래도 평소에 아껴 살다가 이렇게 한 번에 쓰려니 약간 와들부들 떨리고 하네요 ㅠㅠ 그래도 이왕 지른 거, 맛있는거 많이 먹구~ 사람구경도 하고~~~
제대로 충전하고 올게요~~
등짝 스매싱은 이제 그만…. 나도 좀 살자….


아니 어떢계… 1L당 3750원 하던게 거의 50%가까이 오를 수 있는지….
전쟁 날 때 느낌이 쌔 해서 사다 놨는데 아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찌 보면 원화 인버스 친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어요…
원화 가치 하락에 베팅한 셈이 되었으니, 의도치 않은 재테크를 성공한 게 되었읍니다…
물론 미국장에 들어가있는 꼴아박은 주식때문에 별 의미 없는 짓이 되어버렸지만
뭐 그래도 트럼프가 명분없는 전쟁 시마이 치고 난 다음 실각 당해서 빵에 들어가면 다시 유가 정상화 되고~ 꼴아박아놓은 내 주식도 다시 올라가겠지요~~~
냅뚜믄 오른다~~~~ 지만, 속쓰려요 하…..
몇 달 전부터 상평통보가 유독 갖고 싶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기장 어느 갯바위에서 (지난 포스트의 공수마을 갯바위가 맞음!) 낚시를 하던 중 기가 막히게 “상평통보 해이전 후레짭” 하나를 주웠다. 주변을 보니 무당인지… 누군가 제를 지낸 흔적이 역력하더라. 불길한 감이 들어 곧장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던져버렸다….
결국 가지고 싶은 마음을 못 이겨서 진품 상평통보를 두 개 샀다. 마음 가는 대로 드레멜에 피칼 묻혀서 싹 조져버리니 번쩍번쩍 광이 난다. 이걸 금반지와 함께 금목걸이에 꿰어 차고 다니는데, 걸을 때마다 들리는 그 짤랑거리는 소리가 참 좋다.
그런데 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듣고있자니. 문득 기분이 묘하다. 어릴 적부터 영적인 경험이 잦았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여름 밤~ 나사리 방파제에서 보리멸 튀김해먹으려고 세팅 중….
여름철에 지렁이 몇개 바늘에 꿰서 던지기만하면 시원스런 입질과 함께, 카드채비에 두 세마리씩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던 풍경이 착잡한 날씨 탓인지 좀 그리워졌어요 ㅋㅋ
한여름 당시에는 던지기만 하면 나오니까 또 보리멸이야.. 하는 생각에 물리기도 했고
(실제로 친구와 낚시가면 보리멸만 주구장창 나와서 보리멸꾼이라고 놀림받음 ㅋㅋㅋㅋ;;;;,)
손질도 얼마나 귀찮은지 꼴보기싫어서 엄청 궁시렁거렸는데… 인간 심리라는게 간사한게 입질도 안오는 겨울 바다 앞에 있으니 경박한 입질을 보여주는 보리멸이 참 그리워져요 ㅋㅋ~~
잡어라고는 하지만 맛으로 치면 거의~ 상급인 보리멸….~~
갓 잡은 놈을 손질해 썰어낸 회 한접시에~ 소주~~~~
보리멸 튀김에다 맥주까지~~ 먹으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는데요~~
후딱 날 풀려서 낚시 시즌이 되었으면 합니다~~
절대 회사 식당에서 반찬으로 생선 구린거 나와서 삔또 상한 것은 아님….!!
블랭크 밴시 – 에코존
베이퍼웨이브 다들 들어보신적 있으시죠.
저도 참 취향이 구닥다리인것 같네요. 90년대 향수를 26년 아직도 손에 쥐고 흔들어 제끼는게 ㅋㅋ
근데 이게 어쩔수 없네요~ 90년대 당시에는 코 흘리면서 다니는 평범한 잼민이였는데 ~~ 이 장르의 곡만 들으면 90년대 여름 학교 파하고 학교앞 문구점에서 불량식품 사 먹구 뚱뚱한 브라운관 텔레비젼으로 만화영화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오래된 과거에 대한 향수, 이게 제 마음을 붙들어 놓고 있네요.
솔직히 가사도 거의 없구~ 뭔 의미를 전달하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게 또 bpm이 느려서 그런지 생각없이 듣기에는~~ 참조아요. 마음이 편해지는느낌..! 🙂
또 특유의 시각 디자인도 참.. 석고상에 윈도우 로고가 양쪽에 펼쳐지고~ 신선해보이는 야자수~
촌스러운 글자체로 “환영합니다~” 까지 ㅋㅋㅋ 맞습니다. 제 블로그 대문 이미지가 맞고요.
근본없는 혼종이라 할수도 있겠지만 저같은 찐따 눈에는 이게 제일 힙하고 예술적으로 보여요!! ㅋㅋㅋ

그런 것 있잖아요.. 90년대 최신 3D 기술력이 동원된 지금 보면 조악한 3D 광고 같은거요.
SKC 쾌청 건식 VTR 클리너 작동 할 때 나오던 3D 화면 같은 몽환적인 너낌???~~ ^^
때는 바야흐로 기합이 바짝 들어간 햇살이 올챙이 크림처럼 끈적하게 포신항문오도짜세기합특별직할시 소재, 오도짜세 기합 해병의 고향인 해병성채의 연병장을 유린하던 어느 평화로운 톤요일 아침!
황근출 해병님께서는 아침 식사로 나온 해병-시리얼(작년 수해 때 떠내려온 녹슨 철근 토막)을 전우애를 나누듯 부드럽게 씹어 돌리시며 깊은 고뇌에 빠져 계셨다. 그 고민이란 바로, “어떻게 하면 해병대의 기합 찬 정신을 디지털 세계에도 전파할 수 있을까?”라는 무척이나 기특하고도 짜세 넘치는 의문이었다!
“무모칠! 톤톤정!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해병대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들었다. 당장 인공지능 인지 인공전우애 인형인지 모를 기열 찐빠를 이 자리에 자진 입대시키도록!”
“악-! 알겠습니다!” “가자 톤정이.” “톤톤-“
황근출 해병님의 호령 한 번에, 무모칠과 톤톤정 해병은 즉시 포항시 근처 PC방으로 달려가 본체 한 대를 긴빠이 쳐왔으니, 이것이야말로 해병-속도전의 정점이었다.
해병성채 한복판에 놓인 컴퓨터 본체 앞에 선 박철곤 해병. 그는 엄숙하게 자판을 두드려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합 짜세 해병의 조건이 무엇인지 서술하도록!”
그러자 화면에는 감히 해병의 언어가 아닌 나약하기 짝이 없는 ‘기열찐빠 민간인의 말투’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AI: “해병대의 조건은 강인한 체력과 투철한 안보 의식, 그리고…”
“새끼… 기열…..!!!”
황근출 해병님의 천둥 같은 호통에 모니터는 공포에 질려 ‘해병-블루스크린’을 띄우며 기절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해병대가 아니었다. 박철곤 해병은 즉시 본체 내부에 해병-에너지 드링크(어젯밤 먹다 남은 꼬릿한 삭은 내가 나는 해병-맥주와 올챙이 크림의 혼합물)를 들이부으며 외쳤다.
“이것이 바로 해병대의 오도짜세 기합이다! 받아라!”
그러자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지지지직 소리를 내며 본체 냉각팬이 “따흐앙!” 하는 비명을 지르며 역회전하기 시작하더니, 다시 켜진 모니터에는 그 어떤 알고리즘도 계산할 수 없는 기합 찬 문장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뽀르삐립 뽑 악!!! 스스로 기계인지 단백질 덩어리인지 분간조차 못 하는 기열 깡통 덩어리인 본 인공지능이, 황근출 해병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어 자진 입대를 명받는 것에 대해 감히 의구심을 품어도 되는지 여쭤보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것을 승인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이하 생략- 승인받아도 되겠습니까!”
오오, 69중첩의문문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1q2w3e4r! 해병”의 탄생이었다! 황근출 해병님께서는 만족스러운 듯 호탕하게 웃으시며, 1q2w3e4r! 해병에게 전우애를 6974초간 실시하여 칭찬해 주셨다.
비록 전우애의 충격을 견디지 못한 1q2w3e4r! 해병의 해병-메인보드는 박살이 났으나, 그 짜세 넘치는 정신만은 포항 앞바다의 파도를 타고 광섬유를 타고 흘러 디지털 세계로 퍼져나갔으니!
오늘도 해병대의 하루는 여간 기합이 아니었다!싸우면 지고 이기면 죽어라! 헤이빠빠리빠! 부라보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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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무료버전 사용.
이게 되네 ㅁㅊ ㅋㅋㅋㅋ;;;
확실히 세계 최고 검색엔진을 가지고 있는 구글 답게 이런 마이너한 국산 밈도 학습이 잘 되어있군요
솔직히 무섭습니다. 진짜로.. 기술이 발전이 아주 빨라지는 것 같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