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억을 돌이켜보면 내 부친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될만한 단 하나의 행동 양식도 물려주지 못했다. 내 또래 이대남 삼대남들이 흔히들 가지고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에는 늘상 비슷비슷 일정한 풍경이 존재한다. 주말에 느지막이 동네 공터에서 볼을 주거니 받거니하던 캐치볼의 감각, 캠핑장에서 묵묵하게 장비를 설치하던 아버지의 듬직한 뒷모습, 함께 벌거벗고 땀을 흘리던 목욕탕의 온기, 혹은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때 단호한 위압감으로 선을 넘지않도록 잡아주던 모습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나의 유년시절 도화지에는 그 어떤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휘갈긴듯한 낙서자국 여기저기 낡아빠진 백상지 였던것. 참으로 썰렁한 풍경이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부친 원망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러나 대가리가 굵어지고 나 역시 어른이 되니 깨달았다. 이미 반세기 넘게 굳어져버린 인간을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고, 묵은 원망을 품고 사는 것도 결과적으로 내 자신만을 긁어먹을 뿐 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어릴 적 끝내 채워지지 못한 남성성에 대한 결핍감은 다 어디로 튀어나간것인가? 그 결핍이 거칠고 시끄러운 배기음을 내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라는 외형적인 집착으로 드러난것이 아닌가? 부친이 묵묵히 보여주고 알려주어야 했던 남자의 무게감과 짐을. 나는 기계가 주는 강력한 힘을 빌려 뒤늦게 흉내내고 있는것이라고 뒤늦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뒤늦게 흉내낸다고해서 내가 좋아하고 영위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라는 취미가 탈 씌운 가짜에 불과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시작은 가지지 못한 부성에 대한 결핍감이었을지언정 스로틀을 당기고 핸들을 잡아돌리는 그 순간은 내가 주도하는 내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엔진의 진동과 교감하며 느껴지는 감각은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나아감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부친이 남겨주지않는 도화지 위에 억지로 부성의 그림을 덮어 씌우는대신 기름쩔은때로 도화지에 내 취향의 그림을 직접 그려가는게 아닐까?? 결핍에서 일어난 나의 구성요소는 내게 참으로 달콤쌉싸름한 울림이였다.


